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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라는 말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는 1973년 논문에서 '약한 유대(Weak Ties)'의 힘을 이야기했습니다. 친밀한 관계보다 느슨한 연결이 새로운 정보와 기회를 더 많이 가져다준다는 것. 당시엔 구직 네트워크 이론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한 세대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언어가 됐습니다.
혈연, 학연, 지연. 태어나면서 주어지거나 긴 시간 동안 쌓아온 관계들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목적 하나로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부담도, 의무도, 연락도 없지만 그 시간만큼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사이. 요즘 세대가 선택하고 있는 관계의 온도가 이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1인 가구 비중 36.1%로 역대 최고치 기록
· 설문에서 절반이 자주 혹은 가끔 외롭다고 답함
· 소모임 서비스의 월간 이용자 수가 데이팅 앱을 역전
외롭지만 깊은 관계는 부담스럽다는 두 감각이 공존하는 자리에 느슨한 연대가 들어섰습니다.

경찰과 도둑 — 목적 하나로 낯선 사람과 뛰다
· 당근 '경도' 관련 검색량 한 달 사이 670배 급증
· 커뮤니티에 등록된 경도 모임 수 약 100배 증가
· 일부 모임은 100명 규모로 계획돼 조기 마감
· SNS 후기 영상 조회수 300만 회 돌파
이 모임이 특별한 건 콘텐츠가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준비물도 없고, 사전 면접도 없고, 이후 연락 의무도 없습니다. 그냥 같이 뛰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이 진입 장벽을 낮춥니다. 친해지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만나는 것입니다. 어색함을 해소할 필요도 없이 게임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같은 편이 됩니다.
전문가들은 경도 열풍을 여가 소비 방식의 변화 신호로 읽습니다. 골프나 와인처럼 비용과 학습이 필요한 '과시형 여가'에서, 뛰어노는 것 자체가 목적인 '놀이형 여가'로의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쌓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모임 자체가 목적인 방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러닝 크루 — 같은 페이스로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러닝이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 건 러닝 크루 문화 덕분이기도 합니다. 한강변, 도심 공원, 야간 도시에서 느슨하게 모여 함께 달리고 헤어지는 이 모임의 규칙은 하나입니다.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빠지고 싶을 때 빠져도 된다는 것입니다.
주요 마라톤 대회 참가자의 60~66%가 MZ세대라는 수치도 있지만, 러닝 크루에서 더 중요한 건 기록이 아닙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20·30대 10명 중 3명이 달리기를 한다고 답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완주나 순위보다 "같이 달리는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러닝 크루가 느슨한 연대의 좋은 예인 이유는, 관계를 맺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옆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줍니다. 대화 없이도 연결되는 경험, 몇 킬로를 함께 뛰고 나서 헤어질 때의 그 가벼움이 오히려 다음에 또 나오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독서 모임 — 책이라는 공통 언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당근 독서 모임 게시물은 전월 대비 2.2배 늘었습니다. 관련 검색량도 약 50%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가 단순히 한강 신드롬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독서 모임은 그 이전부터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독서 모임이 느슨한 연대의 장으로 작동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으면 어색한 침묵을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 어떻게 느끼셨어요?"라는 질문 하나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같은 언어로 연결합니다. 서로의 배경을 묻지 않아도 되고, 다음에 또 만날 의무도 없습니다. 그 시간만큼 같은 이야기 안에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주목한 키워드입니다. 같음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정서적 유대를 나누는 관계법, 독서 모임은 그것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맥도날드 감튀 모임과 하인즈 케첩 모임 — 브랜드가 연대의 매개가 되다
당근에서 시작된 모임 문화는 브랜드가 매개가 되는 형태로도 진화했습니다. 맥도날드는 공식 감자튀김 모임을 열어 1만 5천 명 이상의 신청자를 받아 50명을 선발했습니다. 하인즈는 2026년 4월 을지로에서 공식 케첩 모임을 예고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공통점으로 모르는 사람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 형태의 모임이 흥미로운 건 진입 장벽이 극도로 낮다는 점입니다. "나는 감자튀김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나이도, 직업도, 관심사도 상관없습니다. 그 하나의 공통점이 대화의 시작점이 되고, 모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집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소비자를 팬으로 만드는 전략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부담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모임이 끝난 뒤 연락처를 교환하든 하지 않든 그 시간으로 이미 충분히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게스트하우스 — 가장 오래된 느슨한 연대의 공간
사실 느슨한 연대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공간은 게스트하우스일지도 모릅니다. 짐을 풀고, 공동 식탁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행 일정이 겹치면 잠깐 동행하고, 헤어질 때는 쿨하게 헤어집니다. 서로의 출신이나 직업보다 지금 이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곳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생기는 관계가 오래가는 경우는 드물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단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다시 보지 않아도 그 만남이 의미 있었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온도가 지금 세대가 선택하는 연대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가식이 필요 없고, 이미지 관리도 필요 없고, 다음이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게스트하우스는 느슨한 연대가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공간이었을 겁니다.

왜 지금, 이 연대인가
경찰과 도둑 같은 일회성 모임은 MZ세대의 '소셜 웰니스', '느슨한 연대'와 같은 관계 맺기 키워드와 결합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몇 가지가 겹쳐 있는 것 같습니다.
1) 깊은 관계를 맺는 데 드는 감정 에너지가 예전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취업난, 경제적 불안, 디지털 피로감. 이미 여러 방면에서 소진되는 일이 많은데, 관계에서까지 지치고 싶지 않다는 감각은 자연스럽습니다.
2) 동시에 완전한 고립은 원하지 않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됐고, 비대면이 편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모임을 찾습니다. 당근 모임 수가 2025년 한 해 전년 대비 63% 증가하고 가입자 수가 125% 늘어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 뉴시스 경찰과 도둑 모임 취재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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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나스미디어 당근 모임 트렌드 분석 (2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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